#1.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아, 답답해! 활주로가 어디 있는 거야?"
모니터로 비행 연습을 하던 나는 홧김에 중얼거렸다. VR을 쓸 때는 고개만 돌리면 옆이 보였는데, 평면 모니터 훈련으로 돌아오니 다시 '시야'가 문제였다. 내 비행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활주로가 옆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보려면 어떻게 할지 몰랐다.
"목에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옆을 못 보니까 비행을 할 수 없네."
VR은 놀랍지만 매번 쓰고 하자니 눈이 빠질 것 같고(무겁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타이탄 PC방에서 보았던 수십만 원짜리 시선 추적 장비(TrackIR 같은 거)를 사기엔 내 마음이 허락치 않았다.
그때, 디스코드에서 레이 튜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야 님, 시점카메라 조종 연습은 했나요?"
"네? 시점?"
*"그러니까 답답한 거예요. 모니터 비행의 핵심은 '가상의 카메라' 를 잘 다뤄야 하거든요."
#2. 엄지손가락으로 고개 돌리기 (햇스위치)
레이 튜터는 티타 님이 빌려준 조종간 헤드에 달린, 4방향으로 움직이는 꼬깔콘모자 모양의 스위치를 가리켰다.
*"그게 바로 '햇스위치(Hat Switch)'예요. 파일럿의 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버튼이요?"
"네. 메타파일럿 유튜브 강의 보셨죠? 조종간에는 이미 3가지 카메라 모드가 셋팅되어 있어요. 자, 한번 눌러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햇스위치를 왼쪽으로 딸깍 밀었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이 획- 하고 조종석 왼쪽 창문으로 돌아갔다.
"카야님은 현재 1번, 조종석 카메라(Cockpit View) 화면을 보고 있어요. 이때 헷스위치를 누르면 조종사의 고개가 돌아가죠."
다시 햇스위치를 아래로 내리자, 모니터 화면은 조종석의 계기판을 보여줬다.
"자, 1번 조종석 카메라 이해했죠?"
"네... 조종사의 고개를 헷스위치로 돌리는 군요"
"이번엔 2번, 외부 카메라(External View) 버튼을 눌러요. 그러면 비행기 밖에서 카야님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보여줄 거에요. 어때요? 게임처럼 익숙하고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죠?"
"와! 내 비행기가 이렇게 예뻤나? 구름이랑 같이 보니까 진짜 그림 같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3번, 목표물 카메라(Target View). 공항이나 활주로 또는 카야님이 원하는 곳을 보여주죠."
#3. 머릿속에 그림 그리기 (Situational Awareness)
햇스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화면 속 풍경이 자유자재로 춤을 췄다. 앞을 보며 조종하다가도, 엄지손가락만 까딱하면 날개 옆의 풍경이 보이고, 내 비행기의 배면도 볼 수 있었다.
"카야 님, 시점 조절은 단순히 구경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레이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모니터는 작지만, 카야 님이 시점카메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죠. 그리고 전후좌우, 위아래. 이 카메라 워킹(Camera Walking)에 익숙해져야 '내 비행기가 지금 어디에, 어떤 자세로 떠 있는지' 머릿속에 3차원 지도가 그려지거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구도(Composition)를 잡으라는 거죠?"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라 이해가 빠르시네요. 비행기 조종은 손으로 하지만, 상황 판단은 이 '카메라 앵글'*로 하는 겁니다."
#4. 만 원의 행복: 빔 아이 트래커 (Beam Eye Tracker)
햇스위치로 시점을 휙휙 돌리는 게 익숙해질 무렵, 레이가 또 하나의 꿀팁을 전수해 줬다.
"이제, 엄지로 돌리는 게 익숙해지셨으면, 이제 마법을 하나 더 부려볼까요? 집에 웹캠(Webcam) 있으시죠?"
"네, 줌(Zoom) 회의할 때 쓰는 거 하나 있어요."
"그거랑 '빔 아이 트래커(Beam Eye Tracker)'라는 앱만 있으면 돼요. 비싼 장비 필요 없어요. 커피 두 잔 값이면 됩니다."
레이가 알려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웹캠을 켰다. 그러자 내 눈동자와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빨간 점들이 내 시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자, 모니터 속 화면도 부드럽게 오른쪽을 비췄다. 내가 화면 구석을 쳐다보면, 카메라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이거 완전 신기해요! VR 안 썼는데 VR 같아요!"
"햇스위치가 수동 카메라라면, 이건 자동 카메라죠. 평소 훈련할 땐 수동카메라나 웹캠을 사용하고, 필요할 때만 VR을 쓰면 피로도 없이 비행할 수 있어요."
#5. 나는 영화감독
이제 나는 더 이상 답답한 경주마가 아니었다. 햇스위치로 10시 방향의 활주로를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계기판을 훑어보고 가끔은 외부 시점으로 빠져나가 노을에 빛나는 비행기의 '인생샷'을 감상했다.
"레디... 액션!"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45도 뱅크(Bank) 턴을 시도했다. 이제부터는 유튜브 비행 강의를 쉽게 따라할 수 있었다. 내 시선이 가는 곳으로 비행기가 움직였고, 모니터라는 사각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비행과 단조롭던 팔레트의 색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었다.
나는 파일럿이자, 내 비행 브이로그를 찍는 영화 감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