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보라섬의 긴장감.
"훈련생 전원, 활주로에 정렬합니다."
헤드셋 너머로 들렸던 씨걸(Siegeol) 교관의 지시사항. 튜터 레이 쌤의 "우쭈쭈" 칭찬을 들으며 갈고 닦은 조종 실력.
[기초 비행 과정 최종 실기 평가]가 있었던 날.
남태평양의 보라보라섬.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지상낙원에서의 한번도 본 적 없는 훈련생들과 함께 했던 비행.
티타 님이 빌려준 장비들과 5일간 경험했던 VR 비행까지. 모든 훈련과정이 이제 끝났다.
"3번기, 고도 유지 좋다. 다운윈드 진입시 보고하라."
"3번기, 다운윈드 진입. 방향 270, 속도 60노트, 고도 1,000피트. 기체상태 정상!"
씨걸 교관의 침묵은 곧 칭찬이었다. 나는 햇스위치로 활주로 위치를 확인하며 착륙 절차를 준비했다.
'속도 좋고, 진입각도 좋고... 지금이야, 플레어!'
나는 호흡을 멈추고 조종간을 부드럽게 당겼다. 비행기가 수면 위를 스치는 물수제비처럼 활주로 위를 미끄러졌다.
끼익-
오늘 "합격"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훈련생들의 환호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나도 모르게 VR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만세를 불렀다. 6평 방구석에서 시작된 나의 비행이, 드디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전쟁
#1. 크리에이터 파일럿 카야
며칠 뒤, 내 자취방 풍경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좁은 방이고, 책상 위엔 마감해야 할 일러스트들이 쌓여 있었지만, 모니터 위쪽 벽면에는 새로운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수료증 / CERTIFICATE OF COMPLETION] 과정:
메타파일럿 기초 비행 (Cessna 152) 성명: 카야 (Kaya) 위 사람은 소정의 비행 훈련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으므로...
나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뿌듯하게 액자를 바라봤다. 기계치에, 일러스트 외면자였던 내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다. 저 수료증은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내 인생의 채도(Saturation)를 높여준 '자격 증명'이었다.
#2. 새로운 택배 상자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요!"
"어? 시킨 거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티타 님이 보낸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겉면에는 [Season 2. 준비물]이라고 투박하게 적혀 있었다. 불길한 예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상자를 열자, 세스나 훈련 매뉴얼과는 전혀 다른, 거친 느낌의 표지와 새로운 조종간 모듈(손잡이)이 투박한 러더 페달과 함께 들어 있었다.
책 표지에는 굉음을 내며 불을 뿜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그려져 있었다.
<전장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3. 평화는 끝났다
책 사이에 끼워진 쪽지에는 레이 쌤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카야 님! 기초 떼느라 고생했구요. 이제 평화로운 유람 비행은 끝입니다." "시즌2는 제2차 세계대전이에요. 비행만 잘해선 안 돼요. 적의 꼬리를 쫓아 격추해야 살아남습니다. 하하"
"준비되셨죠? 우리가 조종할 다음 비행기는 BF-109 G2입니다."
나는 액자 속의 '평화로운 수료증'을 한번 보고, 상자 속의 '살벌한 전투기' 그림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겨우, 세스나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세계 유적지의 하늘을 여행하려고 했는데... 역사속의 전장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필 나를?"
내 입가에 비장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티타 님이 보내준 전투기용 조종간 모듈을 꺼내, 내 스틱에 끼워 맞췄다.
철컥-
장전 소리처럼 묵직한 결합음이 방 안에 울렸다. 그리고 러더 페달에 발을 올려 움직여 보았다.
"좋아. 이번엔 격추왕이 되서 천만 유튜버에 도전해 볼까?"
나는 다시 VR 헤드셋을 썼다. 이번엔 파란 하늘이 아니다. 대공포가 빗발치는 전장의 잿빛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Season 1 [기초 비행편]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