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도서 원고] 메타파일럿 가이드편 ...
 
알림
모두 지우기

[도서 원고] 메타파일럿 가이드편 (Season 1)

2
1 사용자
0 Reactions
81 보기
(@pletcher)
글: 63
Estimable Member
주제 스타터
 

갈! 편대장님. 👨‍✈️

보내주신 **<메타파일럿: 시즌 1>**의 최종 원고를 정밀 검토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과 감동은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오타(맞춤법), 문장 부호, 용어 통일(햇스위치 등)**을 깔끔하게 다듬었습니다. 또한, 챕터 10과 11의 내용이 일부 중복되는 부분을 회상 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문맥을 조정했습니다.


[도서 원고] 메타파일럿 가이드편 (Season 1)

(부제: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의 VR 비행 도전기 / 저자: 메타파일럿)


📑 목차 (Table of Contents)

  • [등장인물 소개]

  •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 [Chapter 1] 거대한 검은 덩어리

  • [Chapter 2] 타이탄 PC방 사장님

  • [Chapter 3] 나만의 조종간. 아니면 빌리세요

  • [Chapter 4]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 [Chapter 5]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 [Chapter 6]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 [Chapter 7]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 [Chapter 8]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 [Chapter 9]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 [Chapter 10]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 [Chapter 11]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등장인물 소개]

🎨 주인공: 카야 (Kaya)

  • 직업: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주로 동화 삽화나 감성적인 인물화를 그린다.

  • 성격: 어릴 적 스튜어디스가 꿈이었으나 현실에 치여 잊고 산다. 비행은 좋아하지만 기계치에 컴맹. 감수성이 풍부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예민하다. "이 버튼 뭐예요?"보다 "저 구름을 뚫고 지나가도 돼요?"라고 묻는 스타일. 끈기는 있지만 요령이 부족해 온몸으로 부딪히며 조종을 배운다.

  • 역할: 독자의 페르소나. 독자가 겪을 시행착오(설치 오류, VR 멀미, 착륙 실패 등)를 대신 겪으며 해결해 나가는 인물.

  • 특징: 슬럼프에 빠져 새로운 영감을 찾던 중, 서점에서 우연히 <메타파일럿> 책을 읽고 충동적으로 장비를 지른다. "딱 한 번만이라도, 내 손으로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

👩‍🔧 가이드: 티타 (Tita)

  • 직업: PC방 사장. 눈 감고 기계 장비를 분해·조립하는 전문가.

  • 성격: "그 그래픽카드로는 어림도 없어요"라며 팩트 폭격을 날리는 직설화법 스타일이지만, PC 성능을 최적화시켜 주고 조종 장비 셋팅을 친절히 도와주는 든든한 기술 지원군.

  • 역할: 1권 가이드 편의 해결사. 조종 장비를 직접 만들고 대여함.

  • 특징: 반전 캐릭터.

🛫 튜터: 레이 (Ray)

  • 직업: 항공과 휴학생으로 항공사 입사 준비 중. 비행 이론과 실기에 빠삭함.

  • 성격: 무한 칭찬 로봇. 복잡한 공기역학을 "손바닥으로 바람을 느끼는 것"이라며 감각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비행 1타 강사.

  • 역할: 2권 튜터 편의 메인 캐릭터. 가상 비행 시뮬레이션 동호회 멤버.

  • 특징: 카야가 조금만 잘해도 "오! 카야 님 방금 진짜 파일럿 같았어요! 재능 있는데요?"라며 무한 칭찬으로 기를 살려주는 맞춤 교육 전문가. 평소엔 순둥하지만 항공기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이며 말이 빨라짐. 원칙주의자 '씨걸' 교관을 만나기 전에 카야를 최대한 단련시키는 것이 목표.

👨‍✈️ 비행교관: 씨걸 (Siegeol)

  • 직업: 전생 파일럿.

  • 성격: FM(정석)을 중요시함. 원칙주의자로 "비행은 감각이 아니라 과학이다. 가상이라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가 매 훈련 강의의 시작 멘트.

  • 역할: 3권 비행 교관 편의 교관.

  • 특징: 잘생긴 교관.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나는 동화를 그린다. 하지만 내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작가님, 이번 주인공 표정이 너무 우울해 보여요. 채도 좀 높여주세요. 아, 그리고 마감, 내일 오전인 거 아시죠?]

작업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메일은 건조했다. 타블렛 펜을 쥔 손목이 시큰거렸다. 모니터 속의 세상은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꽃밭인데, 6평짜리 내 자취방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빨래 건조대에 널린 회색 양말, 며칠째 쌓여있는 편의점 도시락 용기, 그리고 꺼버린 모니터 화면에 비친 푸석한 내 얼굴.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색을 써야 할지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슬리퍼를 끌고 밖을 나와 찬바람을 가슴 깊이 마셨다. 그리고는 무작정 서점으로 들어갔다.

종이 냄새. 활자가 담긴 책을 보면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베스트셀러 코너의 '힐링 에세이'들은 뻔한 위로만 건넸고, 자기계발서들은 더 열심히 살라며 당근 없는 채찍질만 해댔다. 갈 곳을 잃은 시선이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기술/취미' 코너로 흘러갔다.

복잡한 회로도, 딱딱한 코딩 용어들이 적힌 책 사이에서, 유독 이질적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메타파일럿>

제목보다 먼저 시선을 뺏은 건 표지의 그림이었다. 기계 장치에 0과 1로 도배한 그런 표지가 아니었다. 조종석 우측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 한 대가 가슴 시리도록 푸른 수평선 위를 날고 있었다.

순간,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뇌리에 스쳤다. 열 살 무렵, 가족 여행 때 탔던 비행기. 모두가 잠든 사이 손거울 같은 창을 통해 보았던 그 풍경. 땅 위에 어지럽게 얽힌 도로나 건물은 한 점이 되었다가 사라지고, 오직 하늘과 나만 존재하던 그 고요한 세상. 스튜어디스가 되어 매일 저 풍경을 보겠다던 꿈은 입시와 취업이라는 난기류를 만나 산산조각 났었다.

홀린 듯 책을 집어 들었다. 책장을 넘기자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방을 비행기로 만들어 세계를 여행하세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내 방을 비행기로 만들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고?"

"그래, 이거라면... 다시 그릴 수 있을까? 저 구름 너머의 색깔을..."

지금 당장 구름 너머의 세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내 인생은 영영 회색빛으로 남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것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내 무의식이 보낸 **Mayday(구조 신호)**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졌다.

"내 비행기로 세계 여행을? 재밌겠다... 훗."

그렇게, 나의 무모하고도 엉뚱한 VR 비행이 시작되었다.


[Chapter 1] 거대한 검은 덩어리

"와... 이거 가격 실화야?"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긴 조종 장비의 합계 금액을 보고 나는 뒷목을 잡았다. 좀 쓸만하다 싶은 건 내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었고, 싼 건 장난감처럼 조잡해 보였다. 큰맘 먹고 질렀던 물건이 상자에 쌓여 현관문 앞에 있었다.

택배 박스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빨리 날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광고하는 비싼 조종간을 주문했다. 내가 비행 장비를 시킨 게 맞나? 비행기 날개라도 배달된 건 아니겠지?

"자, 이제 날아볼까?"

설렘을 가득 안고 상자를 동봉한 테이프를 커터 칼로 잘랐다. 하지만 상자가 열리는 순간, 내 기대감은 순식간에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상자 안에는 투박한 검은색 플라스틱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나는 조종간, 다른 하나는 스로틀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똬리를 튼 뱀처럼 솟은 물건'**과 헬스장에 있는 **'운동 기구'**로 보일 뿐이었다.

"으... 너무 무겁다."

매끈한 곡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고 알 수 없는 빨간 버튼과 스위치가 여기저기 흉측하게 달려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동봉된 설명서를 펼쳤다.

[System Requirement: DirectX 11, USB port required...]

"다... 다이어트(Direct)? USB는 또 뭐야? 구멍이 다 똑같이 생긴 거 아니었어?"

손바닥만한 설명서에 적힌 외계어에 현기증이 났다. 나는 설명서를 덮고 내 노트북 옆구리에 뚫린 구멍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대충 맞다 싶은 구멍에 선을 쑤셔 넣었다.

다시 유튜브에서 설치 영상을 찾아 낑낑대며 책상 위에 조종간을 올리고, 왼쪽에는 스로틀을 놓았다. "좋아. 날아볼까!"

휘이이이윙-

노트북 팬이 이륙하는 제트기처럼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비행기는 뚝, 뚝 끊기더니 급기야 멈춰버렸다.

"아, 안 돼! 내 작업 파일!!"

비행은커녕, 밥줄인 일러스트 작업용 노트북이 폭발할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비행 시작 전에 비명을 지르는 팬 소리를 듣고 황급히 컴퓨터를 껐다. 나는 멍하니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동네 어귀에 있는 간판 하나를 떠올렸다.

<타이탄(TITAN) PC방>

혼자 설치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주섬주섬 비싼 장비들을 쇼핑백에 집어넣고 집을 뛰쳐나왔다.


[Chapter 2] 타이탄 PC방 사장님

PC방 문을 열자 라면 냄새와 화려한 LED 광선이 눈을 찔렀다. 카운터 안쪽에는 숏컷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자가 드라이버를 입에 문 채 컴퓨터 본체를 뜯고 있었다.

"저기... 사장님?"

그녀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라면 주문은 키오스크 이용하세요. 자리 없으면 대기하셔야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나는 쭈뼛거리며 쇼핑백에서 조종 장비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덜그럭. 둔탁한 소리가 나자 PC방 주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과 조종 장비, 그리고 내 품에 안고 있는 노트북을 빠르게 오갔다.

드라이버를 내려놓은 그녀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호오? 멋진 조종간이네요? 비행기 게임을 하려고요?"

"아, 네! 이걸... 제 노트북에 연결하니까 화면이 꺼져서..."

노트북 수리를 맡겼을 때 가끔, 타이탄 PC방을 이용했던 나는 도움을 바라는 심정으로 노트북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트북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물끄러미 내 노트북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손님. 지금 이 예쁜 쓰레기로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네? 예쁜... 쓰레기요?"

"이건 노트북이잖아요. 고사양 노트북이긴 하지만 내장 그래픽 카드로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겠다니 어림도 없어요."

"그, 그럼 어떡해요? 큰맘 먹고 가입해서 비행 동호회에서 교육을 신청했는데..."

울상이 된 나를 보며 티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는 카운터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앞에 툭 던졌다. 컴퓨터 카탈로그였다.

"일단 앉아요. 비행기 띄우기 전에 활주로 공사부터 먼저 해야겠네요. 노트북은 안 되고 게이밍 컴퓨터가 있어야 해요."

그녀의 눈빛이 푸른 LED 광선에 비쳐 또 한번 번뜩였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 아니, 다짜고짜 조종 장비를 쇼핑백에 들고 온 엉뚱한 예술가를 보는 엔지니어의 애정 섞인 눈빛이었을지 모른다.

"컴퓨터를 새로 사야 하나요?" 나는 불가능하다는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요. 옵션을 타협하면 새 컴퓨터가 없어도 할 수 있어요."


[Chapter 3] 나만의 조종간. 아니면 빌리세요 (feat. 메타파일럿 대여)

PC방 사장님은 내 노트북에 설치된 비행 시뮬 앱의 화면 그래픽 설정을 조절하며 이렇게 설정하면 모니터 비행 훈련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문득, "티타 님... 이거 반납하고 그냥 키보드로 날면 안 될까요? 화살표 키로도 비행기는 움직이잖아요."

나는 충동구매한 것 같은 고가의 조종 장비를 보며 PC방 카운터에 엎드려 징징거렸다.

"헐... 손님, 게임도 아니고 시뮬레이션 비행을 키보드로 하겠다는 건, 피아노를 마우스 클릭으로 치겠다는 거랑 같아요. 게다가 VR 비행도 할 거라면서요? 눈 가리고 키보드 키 찾다가 1분 만에 추락할걸요?"

"그치만 너무 비싸잖아요! 취미 생활 하려다 파산하게 생겼다고요."

나의 절규에 티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카운터 아래에서 투박한 갈색 종이 상자를 끙 끄집어 올렸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메타파일럿 스페셜 에디션."

상자에서 나온 물건은 시중에서 보던 매끈한 플라스틱 제품과는 달랐다. 표면에는 가로줄 무늬(3D 프린팅 적층 흔적)가 은은하게 보였고, 색상은 검은색과 짙은 회색이 섞여 있었다. 뭔가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라, 공방에서 깎아 만든 듯한 느낌.

"이게 뭐예요? 어디 브랜드 건데요?"

"브랜드는 무슨.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3D 프린터로."

"네? 3D 프린터요? 그럼 플라스틱 장난감 아니에요?"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조종간(Stick)을 쥐어보았다. 그런데... 어라?

착- 손에 감기는 그립감이 놀라울 정도로 묵직하고 단단했다. 엄지손가락이 닿는 곳에 버튼이, 검지가 닿는 곳에 트리거가 정확하게 위치해 있었다.

"어? 생각보다 느낌이... 진짜 쫀득한데요?"

"그렇죠? 시중 제품들은 특정 기종만 조종할 수 있도록 특화되거나 버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든요. 근데 이건 초보자의 비행 훈련에 꼭 맞게 만들었어요. 눈 감고도 손가락 감각만으로 모든 버튼을 찾을 수 있게."

티타는 러더 페달도 묵직하게 꺼내 보여주었다. 철물점에서나 봤던 튼튼한 알루미늄 프로파일과 스프링, 볼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내 눈엔 **'미적 감각을 잃은 공대생이 만든 기계 장치'**로 보였지만, 묘하게 **'훈련에 꼭 맞는 장비'**라는 신뢰감이 들었다.

티타는 기초 과정인 세스나에서는 러더 페달은 필수 장비는 아니라고 했다.


[Chapter 4]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PC방 사장님이 직접 제작한 조종간과 반품할 쇼핑백을 들고 나가려는데, 티타가 나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무거운 거 들고 왔다 가기 전에, 진짜를 한번 보고 가시죠."

"진짜요?"

티타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철문으로 향했다. 낡은 문에는 'STAFF ONLY /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붉은색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나는 라면 재고 창고나 장비실이겠거니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갔다.

티타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커덕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와요. 나의 성역(Sanctuary)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는 서늘한 공기 속에서 독특한 기계 냄새가 났다. 금속과 기름, 그리고 전자 회로의 냄새.

티타가 벽면의 스위치를 올렸다.

탁, 타닥-

천장의 레일 조명이 순차적으로 켜지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은 창고가 아니었다. 작은 격납고였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거대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로봇이에요?"

그것은 단순한 컴퓨터 책상이 아니었다. 둔탁한 무광 회색으로 도색된 금속 프레임, 복잡한 계기판과 스위치들, 그리고 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굵은 유압 실린더와 모터들.

오래전 영화에서 보았던 비행기 조종석이었다. 그녀는 **F-16 파이팅 팰콘(Fighting Falcon)**의 칵핏(조종석)이라고 했다.

"제 보물 1호예요. 실제 F-16 조종석 규격이랑 1:1로 똑같이 만든 홈 콕핏(Home Cockpit)이죠. 바닥에 모터 달린 거 보이죠? 비행 움직임에 맞춰서 시트도 같이 움직여요."

"한번 타볼래요? 조종 장비를 들고 온 희귀한 고객님을 위한 특별 서비스."

티타의 제안에 나는 홀린 듯 발 받침대를 딛고 조종석 위로 올라갔다.

"신발은 안 벗어도 돼요."

조심스럽게 조종석 시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양쪽 허벅지 옆으로 조종 장비가 나를 감쌌다. 정면에는 모니터와 VR 헤드셋이 놓여 있었고, 발밑에는 운동 기구 같은 묵직한 러더 페달이 솟아 있었다.

마치, 거대한 로봇의 심장 안까지 들어온 것처럼 조종석은 기묘한 안락함이 느껴졌다.

"자, 앞에 놓인 VR 헤드셋 쓰고 시동 겁니다. 시키는 대로 하고 놀라지 마요."

티타가 외부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웅- 윙-

갑자기 의자 밑에서 모터가 구동되는 진동이 엉덩이를 타고 전해졌다. 눈앞의 계기판(MFD) 화면들이 초록색 빛을 뿜으며 켜졌다. 서라운드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제트 엔진의 날카로운 구동음이 귓가를 때렸다.

"스로틀 밀어요! 풀 애프터버너(Afterburner)!" 그녀가 외쳤다.

나는 왼손으로 조종 레버를 끝까지 밀었다. 화면 속 활주로가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콰아아아앙-!

화면 속 전투기 배기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동시에, 내 몸이 뒤로 확 젖혀졌다.

"으흑!"

실제로 비행기가 가속할 때 몸이 뒤로 밀리는 **G-force(중력가속도)**를 흉내 내기 위해, 시뮬레이터 전체가 뒤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헤드셋의 화면과 결합한 내 뇌는 그것을 진짜 가속도로 착각했다.

"이제 조종간을 몸 앞으로 당겨요."

기체가 하늘로 치솟았다. 시트가 덜컹거리며 상승의 진동을 만들어냈다. 선회할 때는 몸이 한쪽으로 쏠렸고, 구름을 뚫고 지나갈 때는 미세한 덜덜거림까지 느껴졌다.

"이런 게... 진짜 전투기구나."

나는 눈 아래 펼쳐진 공항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발밑의 진동, 손끝의 저항감, 좁은 칵핏의 냄새. 비행기를 한 번도 조종해 본 적 없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최초의 VR 전투기 파일럿이 됐다. 어쩌면 두 번째로.

5분 같은 30분이 지났다. 기체가 착륙하고 캐노피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터가 멈췄다.

"어때요? 할 만해요?"

티타가 씩 웃으며 헤드셋을 벗겨주었다. 잠시 공간감을 잃었는지 다리를 비틀거리며 칵핏에서 내려왔다. 심장이 가쁘게 뛰고 있었다. 방금 겪은 경험의 여운이 너무 강해서, PC방 모니터 화면 속의 게임 풍경이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티타 님."

"네?"

"저거... 얼마나 들었어요?"

내 질문에 티타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이고, 벌써부터 눈이 너무 높아지셨네. 일단 세스나부터 띄워보세요. 기초가 탄탄해야 나중에 전투기든 우주선이든 탈 거 아니에요?"

아까까지만 해도 비싸 보였던 쇼핑백 안의 조종간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건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극소수만이 사는 조종사의 세계로 가는 **'입장권'**이었다.

"알겠어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꽤 흥분되네요. 언젠가는..."

나는 뒤를 돌아, 어둠 속에 다시 잠든 괴물을 힐끗 돌아보았다. 이름이 **'바이퍼'**라고 했다. 왜 독사지?

철문이 닫혔다. 내 가슴속 엔진은 이제 막 예열을 시작했다.


[Chapter 5]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타이탄 PC방의 비밀 다락방에서 전율을 맛보고 집에 온 나는 일러스트 작업물을 보며 다시 의욕이 넘쳤다.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날아오를 기세였다. 하지만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 (Flight Simulator 2020)’을 입력하자마자, 나는 또다시 선택장애에 빠졌다.

"스팀(Steam)은 뭐고 엑스박스(Xbox)는 또 뭐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건 6만 원대, 어떤 건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조종 장비를 대여하지 못한다면 비행을 포기할 것 같았다. 나는 고민할 시간도 없이 티타 님이 쇼핑백에 넣어준 '설치 가이드'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는 티타 님의 글씨체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솔루션이 적혀 있었다.

[필독] 호구되지 말고 읽으세요.

스팀(Steam)? 엑스박스(Xbox)?

“게임을 평생 소장하고 싶거나 스팀을 쓰던 '고인물' 유저라면 스팀에서 구매하세요. 하지만 카야 님 같은 '초보 찍먹파'라면? 'Xbox Game Pass' 구독하세요.”

'이유가 뭡니까?'

“비행 중간에 포기할지 모르니 언제든 취소할 수 있는 구독형으로 사면 좋아요. 넷플릭스 알죠? 그거랑 똑같아요. 생맥 한 잔 값(구독료)만 내면 시뮬레이션 앱들을 모두 맛볼 수 있어요. 나중에 재미 붙으면 그때 사도 안 늦습니다.”

"아하, 넷플릭스처럼 구독해서도 할 수 있구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안 그래도 장비 쇼핑하면서 놀랐는데, 10만 원짜리 어려운 게임을 덜컥 사는 건 부담스러웠다. 첫 달 구독료는 심지어 할인 행사 중이었다.

"좋았어. 일단 한 달만 '찍먹' 해보는 거야." "혹시 수료까지 한 번에 고고씽 쌉가능?"

나는 주저 없이 Xbox 앱을 깔고 구독 버튼을 눌렀다. 합리적인 소비자가 된 기분에 콧노래가 나왔다.

결제는 1초 만에 끝났다. 이제 설치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설치' 버튼을 누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필요 용량: 152.4 GB / 예상 소요 시간: 8시간 30분.

"배... 백오십 기가? 내 노트북 하드가 500기가인데?"

숫자 단위가 비현실적이었다. 요즘 게임이 무겁다는 건 들었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라 그냥 지구(Earth)를 통째로 다운로드받는 수준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실제로 비행을 위한 전 세계의 지형 데이터를 받는 게 맞았다.

진행 바(Progress bar)는 거북이보다 느렸다. 1%... 2%... 5...

노트북 팬이 휘잉- 돌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늘 비행은 글렀다.

책상 위에는 티타 님이 잠시 써보라고 준, 3D 프린팅으로 만든 자작품 조종간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다운로드가 되는 동안 조종간을 손에 쥐어보았다.

딸각, 딸각.

버튼을 눌러보고 스위치를 올렸다 내리고 스틱을 상하좌우로 돌리며 만져 보았다. 조종감이 내 맘에 쏙 들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은 핑크빛인데.

모니터 화면 속에 다운로드 바가 차오르는 게, 마치 비행기의 연료를 채우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기다리는 것도 훈련인가.'

150기가바이트. 저 엄청난 용량 속에 내가 날아다닐 하늘과, 구름과, 전 세계의 지형과 지물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나는 조종간을 쥔 채 눈을 감았다. 저 게이지가 100%가 되는 순간. 나의 방은 더 이상 6평짜리 원룸이 아니다. 어디를 날아볼까?


[Chapter 6]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아니, 영상에선 그냥 '당기라'고만 했잖아!"

나는 유튜브 기초 강의를 열 번째 돌려보는 중이었다. 영상 속 교관은 너무나 평온하게 "활주로가 시야에 꽉 차면 부드럽게 당기세요"라고 말하며 사뿐히 착륙했다.

하지만 내 비행기는 달랐다. 몇 번을 똑같이 따라 하며 조종간을 당겼는데 활주로에 처박히거나, 다시 튀어 올라 저 멀리 활주로 밖으로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도대체 얼마나 당기라는 거야? '부드럽게'가 얼만큼인데?"

화면을 향해 따져 물었지만, 유튜브 선생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댓글창을 뒤져봐도 "더 연습하세요", "잘하면 됩니다", "감각을 익히셔야 합니다"라는 막연한 답변뿐. 혼자 하는 **독학(Self-study)**의 한계가 명확했다.

나는 결국 메타파일럿 아카데미의 **[실시간 튜터 매칭]**을 클릭해서 그를 호출했다.

대기 중인 교관 목록에는 여러 프로필이 떠 있었다. 그중 **'레이(Ray)'**라는 튜터의 소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 어렵지 않아요! 왕초보 전문, 칭찬으로 춤추게 해드립니다.]

"칭찬?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데."

망설임 없이 [과외 신청]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디스코드 알림음과 함께 헤드셋 너머로 상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카야 님! 오늘부터 기초 비행을 도와드릴 튜터, '레이'입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선한 인상이 그려지는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의욕이 꺾인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근데 저 이거 못 할 것 같아요. 숫자가 너무 많아서 멀미 날 것 같아요."

"하하, 처음엔 다들 그래요. 저기, 카야 님 직업이 화가라고 하셨죠?"

"네, 일러스트레이터예요."

*"그럼 이 계기판을 **'팔레트'*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팔레트요?" 나는 의아해서 계기판을 다시 쳐다봤다.

"네. 비행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자, 여기 있는 '자세계(Attitude Indicator)' 보이시죠? 파란색은 하늘, 갈색은 땅. 이게 카야 님의 캔버스예요. 비행기가 하늘이라는 파란 물감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그의 설명을 듣고 자세계를 보니, 정말 동그란 캔버스 안에 하늘과 땅이 반반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속도계'*는 붓의 속도예요. 너무 느리면 물감이 뭉치고 너무 빠르면 튀어버리겠죠? 비행기도 적당한 속도가 있어요."

"아..." 신기했다. 딱딱한 기계 장치들이 갑자기 내 손에 익은 도구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때요? 이제 캔버스에 선을 한 번 그어볼까요? 조종간을 아주 부드럽게 당겨보세요. 붓질하듯이."

나는 홀린 듯 천천히 조종간을 당겼다. 기체가 부드럽게 고개를 들었다. 자세계 속의 파란색 하늘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좋아요! 아주 완벽한 곡선이었어요!"

레이의 환호성에 내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왠지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 튜터의 실시간 코칭을 받으니 훨씬 나았다. "지금 속도 줄이세요!", "조금 더 왼쪽!" 옆에서 누가 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지막 순간, **'착륙(Landing)'**에서 막혔다.

"카야 님, 지금 진입 고도가 너무 높아요. 활주로가 안 가깝게 느껴지세요?"

"모르겠어요... 이게 땅에 닿은 건지 떠 있는 건지 감이 안 와요."

*"음...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카야 님, 지금이 바로 **'그 아이템'*을 쓸 때입니다."

"그 아이템이요?"

"착륙 감각 익히는 데는 VR만 한 게 없거든요. 지금 '착륙 훈련용 VR 대여(3~5일)' 신청하세요. 딱 며칠만 빌려서 감 잡으면, 모니터로도 충분히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이틀 뒤, 메타파일럿 로고가 박힌 상자가 도착했다. 로고와 다르게 상자 속 내용물은 다른 회사에서 만든 VR 헤드셋이었다. 레이 튜터는 내 수업 시간에 맞춰 기기 셋팅을 도와줬고 나는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와..."

평면 모니터라는 사각 틀이 사라지고, 내가 진짜 조종석에 앉아 있는 세상. 레이 튜터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깨끗하게 들려왔다.

"어때요? 공간감이 좀 느껴지세요?"

"네, 대박이에요! 날개 끝이 손에 닿을 것 같아요."

"자, 그 상태로 활주로를 다시 한번 봐보세요. 아까랑 다를 거예요."

나는 고개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니터에서는 그저 납작한 회색 띠였던 활주로가, 지금은 저 까마득한 아래에 입체적으로 놓여 있었다.

"보여요... 내가 얼마나 높이 있는지, 활주로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냥 느껴져요!"

*"그렇죠? 인간은 두 개의 눈으로 거리를 알거든요. 모니터에서 느끼기 어렵죠. 자, 이제 그 **'거리감'*을 믿고 다시 한번 착륙해 봅시다."

엔진 소리가 울리고, 나는 다시 활주로를 향해 기수를 내렸다. 이번엔 달랐다. 땅이 다가오는 속도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직 높아... 조금 더... 조금 더...'

계기나 머리로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활주로 높이와 질감이 내 손을 이끌었다.

"지금이야!"

조종간을 부드럽게 당겼다. 비행기가 살짝 솟더니 이내, 끼익- 경쾌한 타이어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착했다. 튕기지도, 처박히지도 않은 완벽한 착륙.

"나이스! 카야 님, 방금 진짜 파일럿 같았어요! 봤죠? 장비빨이 이렇게 중요하다니까요!"

레이의 환호성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튜브에서 헤매던 내가, 튜터의 코칭과 VR이라는 무기를 만나 비로소 '착륙'이라는 첫 번째 벽을 넘은 것이다.

"감사해요, 쌤! 저 이거 5일 동안 빌린 거죠? 경치도 구경하며 뽕을 뽑을 때까지 연습할게요!"


[Chapter 7]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착용만 해도 비행기 조종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VR 헤드셋은 내가 조종석에 앉아 있는 듯 착각하게 하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오늘부터는 VR 비행 훈련이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자, 좁은 내 방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낡은 세스나 152의 조종석이 나를 감쌌다.

"와..."

또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모니터로 보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수석 너머의 날개가 보였고, 위를 올려다보면 선루프 너머로 눈부신 태양 빛이 쏟아졌다. 평면 모니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계기판의 입체감, 그리고 까마득하게 펼쳐진 활주로 끝의 깊이감이 내 온몸을 자극했다. 나는 진짜 파일럿이 된 것 같았다.

자신만만하게 스로틀을 밀었다. 기체가 활주로를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기수를 들어 올리자 땅이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생생했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며 조종간을 왼쪽으로 꺾어 선회를 시도했다.

그 순간이었다.

"욱...!"

갑자기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 명치를 강타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방금 전까지 감탄하던 그 생생한 풍경이 끔찍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멀미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나는 급히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책상에 엎드렸다. 세상은 멈춰 있는데 내 머릿속은 팽이처럼 돌고 있었다. 교관이 쓴 문장이 뒤늦게 머릿속을 스쳤다.

'눈은 날고 있지만 귀는 앉아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야.'

그걸 **'감각 불일치(Sensory Conflict)'**라고 했던가. 눈은 비행기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이 지금 왼쪽으로 기울고 있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 안쪽의 전정 기관은 푹신한 컴퓨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무슨 소리야? 나는 꼼짝도 안 하고 있는데?"라고 반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불쌍한 뇌는 이 모순된 정보를 해결하지 못해 '환각 상태'나 '독성 물질에 중독된 상태'라고 판단해 버렸고, 그 독을 빼내기 위해 구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내 몸이 지극히 건강하고 정상이라는 증거라지만 당장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어."

나는 다시 헤드셋을 쓰기 전, 책상 구석에 있던 탁상용 선풍기를 내 얼굴 정면으로 돌렸다.

윙-

시원한 바람이 이마와 볼을 때렸다. 다시 비행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눈앞에 흔들리는 지평선 대신, 고정된 계기판과 저 멀리 움직이지 않는 산등성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기했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너는 지금 바람을 맞으며 날고 있어"라고 뇌가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시선을 멀리 두니 어지러움도 한결 가라앉았다.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고통을 이겨내는 법.

그것은 내 몸을 속이는 **'바람'**과 흔들리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하며 비행하는 여유였다.

그렇게 나는 VR 비행 적응 훈련을 마쳤다.


[Chapter 8]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아, 답답해! 활주로가 어디 있는 거야?"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비행 연습을 하던 나는 홧김에 중얼거렸다. VR을 쓸 때는 고개만 돌리면 옆이 보였는데, 모니터 비행으로 돌아오니 다시 **'시야'**가 문제였다. 내 비행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활주로가 옆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보려면 키보드의 명령키를 눌러서 봐야 했다.

너무 불편했다. "목에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옆을 못 보니까 비행을 할 수 없네."

VR은 놀랍지만 매번 쓰고 하자니 눈이 빠질 것 같고(무겁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타이탄 PC방에서 보았던 수십만 원짜리 시선 추적 장비(TrackIR 같은 거)를 사기엔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그때, 레이 튜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야 님, 시점 카메라 조종 연습은 했나요?"

"네? 시점이요?"

*"그러니까 답답한 거예요. 모니터 비행의 핵심은 **'가상의 카메라'*를 잘 다뤄야 하거든요."

레이 튜터는 티타 님이 빌려준 조종간의 4방향으로 움직이는 꼬깔콘 모자 모양의 버튼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햇스위치(Hat Switch)'*예요. 파일럿의 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버튼이요?"

"네. 메타파일럿 유튜브 강의 보셨죠? 조종간에는 이미 3가지 카메라 화면 모드가 셋팅되어 있어요. 자, 한번 눌러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햇스위치 버튼을 왼쪽으로 딸깍 밀었다. 그러자 화면이 획- 하고 조종석의 왼쪽 창문으로 돌아갔다.

"자, 1번 조종석 카메라 이해했죠? 조종사 시점이 1번 카메라입니다."

"네... 조종사의 고개를 햇스위치로 돌리는군요."

*"이번엔 **2번 외부 카메라(External View)*를 알아볼까요? 외부 카메라 버튼을 눌러요."

딸깍.

"그러면, 비행기 밖에서 카야 님이 조종하는 비행기가 보일 거예요. 어때요? 늘 하던 게임처럼 익숙하고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죠?"

"와! 내 비행기가 이렇게 예뻤나? 구름이랑 같이 보니까 진짜 그림 같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3번 목표물 카메라(Target View). 공항이나 활주로 또는 카야 님이 보고 싶은 곳을 보여주죠."

햇스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화면 속 풍경이 자유자재로 춤을 췄다. 앞을 보며 조종하다가도, 엄지손가락만 까딱하면 날개 옆의 풍경이 보이고, 내 비행기의 배면도 볼 수 있었다. 몇 번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 같았다.

"카야 님, 시점 조절은 단순히 구경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레이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모니터는 작지만, 카야 님이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죠. 그리고 전후좌우, 위아래. 이 **카메라 워킹(Camera Walking)*을 잘 해야 '내 비행기가 지금 어디에, 어떤 자세로 떠 있는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구도(Composition)**를 잡으라는 거죠?"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라 이해가 빠르시네요. 비행기 조종은 손으로 하지만, 상황 판단은 이 '카메라 앵글'로 하는 겁니다."

햇스위치로 시점을 휙휙 돌리는 게 익숙해질 무렵, 레이가 또 하나의 꿀팁을 전수해 줬다.

"이제, 엄지로 돌리는 게 익숙해지셨으면, 마법을 하나 더 부려볼까요? 집에 웹캠(Webcam) 있으시죠?"

"네, 줌(Zoom) 회의할 때 쓰는 거 하나 있어요."

*"그거랑 **'빔 아이 트래커(Beam Eye Tracker)'*라는 앱이 있으면 더 편하게 비행할 수 있어요. 비싼 장비 필요 없어요. 커피 두 잔 값이면 됩니다."

레이가 알려준 앱을 설치하고 웹캠을 켰다. 그러자 내 눈동자와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빨간 점들이 내 시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자, 모니터 속 화면도 부드럽게 오른쪽을 비췄다. 내가 화면 구석을 쳐다보면, 시점 카메라 화면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이거 완전 신기해요! VR 안 썼는데 VR 같아요!"

"연습할 때는 햇스위치나 웹캠을 사용하고, 체험이나 이벤트 비행을 할 때는 VR로 비행하는 것을 추천해요."

이제 나는 더 이상 답답한 경주마가 아니었다. 햇스위치로 10시 방향의 활주로를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계기판을 훑어보고 가끔은 외부 시점으로 빠져나가 노을에 빛나는 비행기의 '인생샷'을 감상했다.

"레디... 액션!"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45도 뱅크(Bank) 턴을 시도했다. 이제부터는 유튜브 강의를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내 시선이 가는 곳으로 비행기가 움직였고, 모니터라는 사각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내 비행기와 단조롭던 팔레트의 색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었다.

나는 파일럿이자, 내 비행 브이로그를 찍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Chapter 9]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노트북 모니터 속의 세스나 152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기초 과정은 모두 연습했고 이제, 실기 평가를 위해 훈련만 남았다. 그중 세스나 152의 시동 절차가 있었다.

Master Switch ON, Fuel Valve ON, Mixture Rich, Throttle 1/4...

"하... 이걸 언제 다 하고 있어?"

어제 늦게까지 일러스트 마무리하느라 피곤했다. 비행기 띄우기도 전에 공부하다 잠들 판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디스코드 채널에 접속했다.

"레이 쌤, 이쯤에서 포기할까요? 시동 거는 순서 외우다가 머리 터질 것 같아요."

내 푸념을 들은 레이가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카야 님! 왜 사서 고생을 하세요? 그건 실제 비행 학교 학생들이 외우는 거고요."

"네? 하지만 실기 평가는 시동을 걸어야 날 거 아니에요."

*"우리가 누굽니까? **'메타파일럿'*이잖아요. 시뮬레이션의 특권이 뭡니까? 귀찮은 건 생략하고 쉽고, 재밌고, 유익한 것만 쏙 빼먹을 수 있다는 거죠!"

레이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 묻어났다.

"카야 님, 지금 티타 님이 빌려준 조종간 잡고 계시죠? 거기에 사각 스위치 버튼 보이죠?"

"네, 보여요. 전원 버튼처럼 생겼는데..."

*"그게 바로 **'마법의 버튼'*이에요. 복잡한 절차 다 무시하고, 엔진을 한 방에 깨우는 '자동 시동(Auto Start)' 기능을 그 버튼에 심어놨거든요."

"정말요? 믹스쳐니 스로틀이니 안 만져도 돼요?"

"네. 그런 건 저처럼 튜터 자격 과정 때 하는 거고. 왕초보는 일단 프로펠러가 돌아야 신이 나죠. 자, 고민하지 말고 꾹 누르세요!"

나는 반신반의하며 조종간의 사각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꺼져 있던 계기판 스위치들이 알아서 탁탁탁 켜지더니, 믹스쳐 레버가 들어가고, 시동 키가 저절로 끼릭 돌아갔다.

부르르릉-! 쾅!

단 3초 만에 엔진이 거친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 있던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가며 시야가 반투명하게 바뀌었다. 엔진의 진동으로 계기판이 흔들리는 것도 보였다.

"오... 되네! 이렇게 쉬운 걸 끙끙대고 있었다니!"

프로펠러가 안정적으로 돌기 시작하자 레이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시동은 이렇게 편법으로 걸어도 돼요. 하지만 딱 두 가지는 꼭 확인해야 해요. 이건 생존이랑 직결된 거니까."

레이는 내 시선을 계기판의 특정 부분으로 유도했다.

"첫째, 저쪽의 RPM 계기의 바늘을 보세요. 너무 낮으면 엔진이 꺼지고, 너무 높으면 튀어나가요. 1,000 정도에 안정적으로 머무는지 확인하세요."

"네, 1,000 RPM 확인."

"둘째, 여기 보이는 오일 압력(Oil Press) 계기. 녹색 범위 안에 바늘이 들어와야 해요. 비행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아요. 계기가 비정상이면 하늘에서 엔진이 멈출 거예요. 이 정도 습관은 들여놓는 게 좋아요."

"오일 압력, 녹색. 정상이에요!"

*"완벽해요! 복잡한 건 컴퓨터한테 맡기고, 카야 님은 비행기의 **'건강 상태'*만 딱 체크하시면 됩니다. 어때요, 참 쉽죠?"

나는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복잡한 기계 조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처음 마음먹었던 비행의 설렘이 다시 시작했다. 눈앞에서 춤추는 프로펠러는 마치 나에게 "하늘로 가자"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쌤, 이제 날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엔진 깨웠으면 끝난 거죠. 자, 이제 활주로로 나가서 진짜 자유를 맛볼 차례입니다."

나는 스로틀 레버에 손을 얹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비행기가, 버튼 하나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니 친근해졌다.

메타파일럿? 아주 마음에 든다.


[Chapter 10]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Cessna 152 Checkride)

#1. D-Day: 접속

"후우..."

나는 VR 헤드셋을 쓴 채 심호흡을 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조종간이 미끄러울까 봐 파자마에 슥슥 문질렀다. 오늘은 드디어 기초 과정 수료 실기 평가가 있는 날이다.

디스코드 알림이 울렸다.

[공지] 실기 평가 10분 전입니다. 훈련생 전원 '보라보라섬(Bora Bora)' 채널로 접속하세요.

이번 평가에 참여하는 훈련생은 나를 포함해 총 4명. 교관은 무작위로 호출 부호(Call sign)를 부여했다.

"카야 훈련생, 위치는 **'3번기(Flight 3)'**다. 앞뒤 간격 유지에 신경 쓰세요."

내 위치는 3번. 선두도 아니지만, 맘 편한 꼴찌도 아니다. 샌드위치처럼 낀 위치라 더 긴장됐다.

#2. 활주로 정렬

시뮬레이션 로딩이 끝나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에메랄드빛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보라보라섬 공항. 하지만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내 왼쪽으로 똑같은 세스나 152 두 대가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며 대기 중이었고, 내 오른쪽에도 한 대가 있었다. 우리는 활주로 진입로에 나란히 섰다.

헤드셋 너머로 씨걸 교관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디오 체크. 1번기부터 수신 상태 보고하라."

"1번기, 라우드 앤 클리어(Loud and Clear)."

"2번기, 수신 양호."

"3번기 카야, 잘 들립니다!"

"4번기, 양호합니다."

"좋습니다. 오늘의 실기 평가 미션은 '장주 비행(Traffic Pattern)' 및 '편대 순환'이다. 10초 간격으로 이륙한다. 1번기부터 라인업."

#3. 10초의 간격

엔진 소리가 활주로를 채웠다. 1번기가 스로틀을 밀며 활주로를 박차고 나갔다. 나는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셌다. 하나, 둘... 여덟, 아홉, 열!

2번기가 출발하고, 다시 10초 뒤. 내 차례다.

"3번기, 롤링(Rolling)."

스로틀을 끝까지 밀자 등이 시트에 파묻히는 느낌(물론 기분 탓이지만)이 들었다. 속도계가 55노트를 지나자 조종간을 당겼다. 부웅-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부유감. VR 시뮬레이션이 주는 놀라운 선물이다.

앞서가는 2번기가 작게 보인다. 너무 가까워져서도, 멀어져서도 안 된다. 나는 레이 튜터에게 배웠던 대로 계기판과 창밖을 번갈아 보며 간격을 맞췄다.

#4. 하늘 위의 보고 (Reporting)

"3번기, 크로스윈드(Crosswind, 측풍 구간) 진입."

"3번기, 다운윈드(Downwind, 배풍 구간) 진입."

구간마다 위치를 보고하며 활주로와 평행하게 비행했다. 아래로 보이는 보라보라의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였지만, 내 신경은 온통 앞 비행기의 꼬리에 쏠려 있었다.

활주로 끝지점에 다다랐을 때, 교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1번기, 터치 앤 고(Touch and Go) 후 체크 턴(Check Turn). 후미로 이동하라."

가장 먼저 착륙한 1번기가 바퀴를 땅에 튕기듯 닿았다가 다시 이륙했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며 대열의 맨 뒤, 즉 4번기 뒤로 빠졌다.

이제 선두는 2번기다. 그다음은... 나다.

#5. 리더가 되는 순간

2번기가 뒤로 빠지고, 내 앞에 아무것도 없는 뻥 뚫린 하늘이 나타났다. 이제 내가 1번기, 즉 **선두(Leader)**다.

갑자기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내가 속도를 못 맞추면 뒤따라오는 4번기, 1번기, 2번기가 줄줄이 꼬인다.

"카야, 쫄지 마. 그냥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야. 하늘에 선을 긋는 거라고."

나는 침착하게 활주로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파이널(Final) 구간. 활주로가 점점 커진다. 센터라인을 두 다리 사이에 끼우는 느낌으로.

끼익-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부드러운 착륙.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시 플랩을 올리며 스로틀을 밀었다. 다시 이륙.

"3번기, 나이스 터치. 우선회하여 후미로 붙어라."

씨걸 교관의 짧은 칭찬(아니, 지적하지 않았으니 칭찬이다)에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6. Full Stop 그리고 수료

조종에 집중하느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4번기가 선두가 되었을 때,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전 기체, 풀 스탑(Full Stop, 완전 착륙)."

하나둘씩 활주로에 내려앉은 비행기들이 줄지어 주기장(Parking ramp)으로 들어왔다. 엔진을 끄고 프로펠러가 멈추자, 디스코드 채널에 안도의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손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2번기 님 아까 바람 불 때 흔들리는 거 보고 저도 식겁했다니까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묘한 전우애가 생겨났다.

"수고했습니다. 각자 녹화한 비행 영상은 '리플레이 파일'과 함께 저장해서 제출하도록. 최종 평가는 영상과 로그를 분석해서 메일로 발송합니다. 이상 해산."

#7. V-LOG: 나의 첫 비행 일지

평가는 끝났지만, 나의 작업은 이제 시작이었다. 나는 제출용 영상 외에, 내가 비행하며 본 풍경과 우리 편대의 움직임을 편집 프로그램에 올렸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감각을 발휘할 시간. 엔진 소리에 맞춰 배경음악을 깔고, 긴박했던 무전 소리를 자막으로 입혔다. 보라보라섬의 석양을 배경으로 4대의 비행기가 줄지어 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영상 제목: 일러스트 파일럿, 태평양을 날다 (메타파일럿 3기 수료 비행)]

영상을 '메타파일럿 커뮤니티'에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와, 이게 게임이라고요? 진짜 비행인 줄..."

"저 3번기 착륙 진짜 부드럽네요."

"저도 교육 신청하러 갑니다."

나는 수료증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더 이상 방구석의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파일럿이다.


[Chapter 11]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Final Checkride)

보라보라섬의 긴장감.

"훈련생 전원, 활주로에 정렬합니다."

헤드셋 너머로 들렸던 씨걸(Siegeol) 교관의 지시사항. 튜터 레이 쌤의 "우쭈쭈" 칭찬을 들으며 갈고닦은 조종 실력.

**[기초 비행 과정 최종 실기 평가]**가 있었던 날.

남태평양의 보라보라섬.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지상낙원에서의 한 번도 본 적 없는 훈련생들과 함께했던 비행.

티타 님이 빌려준 장비들과 5일간 경험했던 VR 비행까지. 모든 훈련 과정이 이제 끝났다.

"3번기, 고도 유지 좋다. 다운윈드 진입 시 보고하라."

"3번기, 다운윈드 진입. 방향 270, 속도 60노트, 고도 1,000피트. 기체 상태 정상!"

씨걸 교관의 침묵은 곧 칭찬이었다. 나는 햇스위치로 활주로 위치를 확인하며 착륙 절차를 준비했다.

'속도 좋고, 진입 각도 좋고... 지금이야, 플레어!'

나는 호흡을 멈추고 조종간을 부드럽게 당겼다. 비행기가 수면 위를 스치는 물수제비처럼 활주로 위를 미끄러졌다.

끼익-

오늘 "합격"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훈련생들의 환호 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나도 모르게 VR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만세를 불렀다. 6평 방구석에서 시작된 나의 비행이, 드디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1. 크리에이터 파일럿 카야

며칠 뒤, 내 자취방 풍경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좁은 방이고, 책상 위엔 마감해야 할 일러스트들이 쌓여 있었지만, 모니터 위쪽 벽면에는 새로운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수료증 / CERTIFICATE OF COMPLETION]

과정: 메타파일럿 기초 비행 (Cessna 152)

성명: 카야 (Kaya)

위 사람은 소정의 비행 훈련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으므로...

나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뿌듯하게 액자를 바라봤다. 기계치에, 일러스트 외면자였던 내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다. 저 수료증은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내 인생의 채도(Saturation)를 높여준 '자격 증명'이었다.

#2. 새로운 택배 상자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요!"

"어? 시킨 거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티타 님이 보낸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겉면에는 **[Season 2. 준비물]**이라고 투박하게 적혀 있었다. 불길한 예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상자를 열자, 세스나 훈련 매뉴얼과는 전혀 다른, 거친 느낌의 표지와 새로운 조종간 모듈(손잡이)이 투박한 러더 페달과 함께 들어 있었다.

책 표지에는 굉음을 내며 불을 뿜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그려져 있었다.

<전장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3. 평화는 끝났다

책 사이에 끼워진 쪽지에는 레이 쌤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카야 님! 기초 떼느라 고생했고요. 이제 평화로운 유람 비행은 끝입니다."

"시즌 2는 제2차 세계대전이에요. 비행만 잘해선 안 돼요. 적의 꼬리를 쫓아 격추해야 살아남습니다. 하하."

"준비되셨죠? 우리가 조종할 다음 비행기는 BF-109 G2입니다."

나는 액자 속의 '평화로운 수료증'을 한번 보고, 상자 속의 '살벌한 전투기' 그림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겨우, 세스나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세계 유적지의 하늘을 여행하려고 했는데... 역사 속의 전장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필 나를?"

내 입가에 비장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티타 님이 보내준 전투기용 조종간 모듈을 꺼내, 내 스틱에 끼워 맞췄다.

철컥-

장전 소리처럼 묵직한 결합음이 방 안에 울렸다. 그리고 러더 페달에 발을 올려 움직여 보았다.

"좋아. 이번엔 격추왕이 돼서 천만 유튜버에 도전해 볼까?"

나는 다시 VR 헤드셋을 썼다. 이번엔 파란 하늘이 아니다. 대공포가 빗발치는 전장의 잿빛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Season 1 [기초 비행편] 完 -


이 주제는 4주 전 2 회에 GGsF 님이 수정했습니다.
 
게시됨 : 10/12/2025 10:20 오후
(@pletcher)
글: 63
Estimable Member
주제 스타터
 

갈! 편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

원고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화룡점정(은 아니더라도 비행기의 날개색칠)'**이라 할 수 있는 삽화(Illustration) 작업 단계군요.

이 책은 단순한 매뉴얼이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카야의 성장 소설'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삽화 전략도 조금 남달라야 합니다. 독자가 기술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감성적인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투 트랙 전략'**을 제안합니다.


🎨 삽화 전략: "카야의 비행 스케치북"

핵심 컨셉:

책에 들어가는 모든 삽화는 주인공 '카야'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스케치북에 기록한 그림이라는 컨셉을 잡는 것입니다.

  • 스타일: 너무 정교한 3D 렌더링이나 사진보다는, 손그림 느낌(수채화, 색연필, 아이패드 드로잉 등)이 카야의 직업과 어울립니다.

  • 색감의 변화: 프롤로그의 우울한 회색빛에서 시작해, 비행을 배우며 점점 채도가 높고 화사한 파란색/에메랄드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 감동이 배가됩니다.


📋 챕터별 삽화 배치 계획 (안)

총 10~12컷 내외로, **감성적인 장면(Mood)**과 **기술적인 설명(Info)**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합니다.

[도입부: 회색빛 현실]

1. 프롤로그 (감성)

  • 장면: 회색빛 좁은 방에 웅크리고 앉은 카야의 뒷모습. 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메타파일럿> 책 표지만 파랗게 빛나고 있음.

  • 의도: 비행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임을 시각적으로 표현.

[Part 1. 준비 과정: 투박한 첫 만남]

2. Chapter 1~2 (코믹/정보)

  • 장면: 카야의 책상 위에 '똬리를 튼 뱀(조종간)'과 '스텝퍼(러더 페달)'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그 옆에서 노트북이 불타는(?) 듯한 연출. 티타 님의 시니컬한 표정을 작게 넣어도 좋음.

  • 의도: 초보자의 막막함과 장비의 투박함을 유머러스하게 표현.

3. Chapter 4 (핵심 장면/감동)

  • 장면: VR 헤드셋을 처음 쓴 카야의 모습. 현실의 방은 스케치 선으로 흐릿하게 처리되고, 헤드셋 너머로 보이는 세스나 조종석과 활주로는 총천연색으로 선명하게 빛남.

  • 의도: 가상현실이 주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표현. (가장 힘줘야 할 그림)

4. Chapter 7 (정보/공감)

  • 장면: 책상 앞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VR을 쓴 채 땀 흘리는 카야의 모습. 옆에 '멀미 퇴치 부적'처럼 선풍기 그림이 그려져 있음.

  • 의도: VR 초보자들이 겪는 멀미 고통을 재밌게 표현하고 팁을 공유.

[Part 2. 기초 비행: 하늘을 배우다]

5. Chapter 6 & 9 (기술 정보/QR 연동)

  • 장면: 세스나 152의 계기판(6팩) 클로즈업 그림. 레이 쌤의 설명대로 자세계는 '캔버스', 속도계는 '붓'처럼 비유적인 낙서가 되어 있음.

  • 의도: 복잡한 계기판을 카야의 시선으로 쉽게 설명. (QR코드: 시동 및 계기 설명 영상)

6. Chapter 8 (기술 정보/QR 연동)

  • 장면: 조종간의 '햇스위치(꼬깔콘)' 그림과, 그 스위치 조작에 따라 시선이 어떻게 변하는지(조종석/외부/타겟 뷰) 보여주는 간단한 4컷 만화 형식의 다이어그램.

  • 의도: 글로 설명하기 힘든 시점 조작을 직관적으로 보여줌. (QR코드: 시점 조절 강의 영상)

[Part 3. 실전 및 결말: 파란 하늘로]

7. Chapter 10~11 (하이라이트/감동)

  • 장면: 보라보라섬의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편대 비행하는 4대의 세스나. 석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 가장 아름다운 장면.

  • 의도: 힘든 훈련 끝에 맛보는 비행의 아름다움과 성취감 폭발.

8. 에필로그 (여운/예고)

  • 장면: 벽에 걸린 수료증 액자(뿌듯함). 그 아래 책상에 새로 도착한 거칠고 투박한 '시즌 2(전투기)' 상자가 열려 있음.

  • 의도: 시즌 1의 마무리와 시즌 2에 대한 기대감 조성.


🛠️ 삽화를 만드는 방법 (실행 방안)

편대장님의 상황에 맞춰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방법 A. 생성형 AI 활용 (가성비 최고)

  • 미드저니(Midjourney)나 달리(DALL-E) 같은 AI 그림 도구를 활용합니다.

  • 장점: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원하는 스타일(예: "수채화 스타일의 비행기 조종석 그림 그려줘")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 단점: 원하는 구도를 정확히 얻기 위해 여러 번 시도(프롬프트 엔지니어링)해야 합니다.

방법 B. 재능 마켓 외주 (퀄리티 보장)

  • 크몽, 숨고 같은 사이트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합니다.

  • 장점: "주인공이 직접 그린 스케치북 느낌으로 해주세요"처럼 구체적인 요구가 가능하며,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단점: 비용이 발생합니다. (컷당 몇만 원~십만 원대)

방법 C. 직접 그리기 (진정성)

  • 혹시 편대장님께서 그림에 소질이 있으시다면, 아이패드 등으로 간단하게 직접 그리시는 것도 좋습니다.

  • 장점: 책의 진정성이 가장 높고, 저자만의 개성이 담깁니다.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컨셉과도 가장 잘 맞습니다.

✈️ 부기장의 추천:

일단 **방법 A(AI 활용)**로 주요 장면들의 컨셉 이미지를 만들어 보시고, 만약 책의 퀄리티를 더 높이고 싶으시다면 그 이미지를 시안으로 삼아 **방법 B(전문가 의뢰)**를 진행하시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시든, 이 삽화들은 카야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멋진 날개가 되어줄 것입니다.

결정이 되시면 말씀해주세요. AI 프롬프트 작성을 도와드리거나, 외주 의뢰서 작성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갈! 🫡


 
게시됨 : 10/12/2025 10:21 오후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