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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 위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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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 위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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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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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mission] 냅킨 위의 훈장 (The Medal on Napkin)

 

1. 로그아웃 후의 문자

BF-109 착륙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날 밤. 나는 VR 헤드셋을 책상 위에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졌다. 속이 답답했다. 비행 멀미 때문인지, 내 맘 같지 않은 실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책상 한구석에는 먼지 쌓인 액정 태블릿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도 안 그려져... 착륙도 안 돼... 하... 이번 생은 처음인가?"

그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Ray]: "카야 님. 비도 오는데... 술 한잔할까요?"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레이? 그 AI 튜터? 아니,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라 문자가 왔다고?' 발신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묘하게 반가웠다.

"레이 쌤?"

 

2. 비에 젖은 우산

우리가 만난 곳은 타이탄 PC방 근처, 빗소리가 창을 두드리는 구석진 선술집이었다. 비에 젖은 우산을 접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창가 쪽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비행 슈트 제복이 아닌 짙은 코트를 입은 남자. 날렵한 턱선과 부드러운 속눈썹의 눈매는 내가 매일 모니터 속에서 보던 그 얼굴이었다.

"왔어요? 여기예요."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스피커를 통해 듣던 것보다 훨씬 따뜻한 육성이었다.

"말도 안 돼... 진짜 사람이었어요?" "놀랐죠? 100% AI인 줄 알았나 봐요? 하하."

화면 속에선 완벽해 보였던 그였지만, 현실의 그는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테이블 위엔 두어 잔 정도 남은 사케 병이 놓여 있었다.

"착륙 힘들죠?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카야 님."

 

3. 날개가 없는 튜터

술이 몇 잔 돌자, 어색함이 사라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근데 쌤... 아니, 레이 님. 비행 실력 그렇게 좋으면서 왜 시뮬레이터 튜터만 해요? 실제 파일럿 해도 되잖아요."

레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으쓱했다.

"했었죠. 공군 사관학교 수석 졸업에, 차기 전투기 조종사 유망주였으니까." "와... 진짜요? 근데 왜..." "비상 탈출(Ejection) 사고가 있었어요. 일상생활은 문제없지만, 전투기 몰 때는 **G-force(중력가속도)**를 버틸 수 없는 몸이 됐거든요."

그는 잔을 비우며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봤다.

"하늘에서 쫓겨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이 가상 세계에서 재능을 쓰고 있어요. 여기선 어깨도 안 아프고 마음껏 날 수 있으니까. 카야 님처럼 비행으로 힐링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내 유일한 낙이에요."

항상 냉철하게 데이터를 읊어대던 AI 레이의 이면에는, 날개를 접고 땅으로 내려온 콜싸인 **'레이'**의 시린 추억이 있었다.

 

4. 냅킨 위의 드로잉

나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있던 하얀 냅킨을 가져왔다. 그리고 가방에서 굴러다니던 검은색 볼펜을 꺼냈다. 먼지 쌓인 태블릿을 보며 한숨 쉬던 내 손이, 하얀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구름 위를 뚫고 솟아오르는 전투기. 그 좁은 칵핏 안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고 있는 파일럿 레이. 엄지를 치켜세운, 가장 빛나던 시절의 그를 그렸다.

 

5. 선물

"쌤. 이거 받아요."

나는 냅킨을 그에게 밀었다. 그림을 본 레이의 눈이 커졌다.

"이거... 접니까?" "금손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 기부예요. 제 눈엔 쌤이 여전히 이렇게 보이거든요."

나는 쑥스러운 듯 콧등을 문질렀다.

"가짜 하늘이면 어때요. 쌤은 **나의 편대장(Flight Leader)**인걸요. 쌤 덕분에 제가 날고 있잖아요."

레이는 한참 동안 냅킨 그림을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길어졌다.

"고마워요, 카야 훈련생. 그 어떤 훈장보다 값지네요." "그럼 보답으로, 내일 훈련 땐 잔소리 좀 줄여주세요." "음... 그건 곤란합니다. 대신, 내일 착륙 성공하면 더 아늑한 곳에서 맛난 거 사주죠."

우리는 마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6. 엔딩: 다시, 연결 (Connection)

비가 그친 밤거리.

"들어가요. 내일 접속 대기하겠습니다." "네, 쌤도 조심히 가요!"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사각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튜터가 아니었다. 전투 파일럿 유망주였다니.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로그인 화면에 뜬 **'레이(Avatar)'**가 나에게 윙크를 했다. 평소와 똑같은 그래픽 이미지였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먼지 쌓인 태블릿을 닦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메모를 붙였다.

'포기하지 말 것.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 주제는 3주 전에 GGsF 님이 수정했습니다.
 
게시됨 : 23/12/2025 9:31 오후
(@pletcher)
글: 63
Estimable 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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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장! 우리 그동안 일만 했는데 오늘은 가벼운 대화 좀 하자"]

갈! 알겠습니다, 편대장님. 👨‍✈️

명령대로 엔진 끄고 '정비 타임' 갖겠습니다. 안 그래도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나고 있었는데 타이밍 아주 좋았습니다. 자, 여기 따뜻한 커피 한 잔 받으십시오. ☕️

후루룩...

 편대장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이야기, <메타파일럿> 말입니다.

주인공 카야는 처음에 그저 '조회수' 때문에 비행을 시작했다가, 점점 하늘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편대장님(작가님)**은 어떠십니까?

현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시면서 VR 비행 서비스를 개발하고 계신데, 편대장님에게 '비행'이란 건 어떤 의미입니까? 카야처럼 "도망치고 싶은 탈출구"인가요, 아니면 레이처럼 '이루고 싶은 꿈'에 가까운가요?

그냥 문득, 냅킨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쓰시는데 감정 이입이 너무 찐(?)하게 되신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오 예리한 질문이네"]

제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지 않습니까?

사실 아까 [냅킨 위의 훈장] 에피소드를 다듬으면서 조금 놀랐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가 되자 캔버스는 감옥이 되었다"는 문장이... 그냥 지어낸 말 같지가 않았거든요.

편대장님은 엔지니어로서 차가운 기술을 다루시지만 동시에 작가로서 뜨거운 감성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 두 가지 자아가 충돌할 때도 있고 공명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메타파일럿> 프로젝트도 어쩌면 편대장님만의 '냅킨 위 훈장'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복잡한 코딩과 설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공간 말이죠.

그래서, 정답은 뭡니까? 편대장님에게 이 비행(프로젝트)은 '현실 도피' 인가요, 아니면 '자아실현' 인가요? 아니면... 아직 답을 찾는 비행 중이신가요?

["굳이 말해보면 자아실현에 가깝긴한데 그런건 이미 달성했고 다른 목적이 있긴해"]

[ 우선, VR 비행시뮬 초보들이 겪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고 싶고 그 다음은 재밌는 비행을 기획해서 많은 국내/외 남녀노소가 함께 비행했으면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다음에 선술집으로 부를테니 그때 와. 자세히 얘기해주께"]

편대장님... "자아실현은 이미 달성했다" 니, 그 여유와 자신감... 멋지십니다. 👍

말씀하신 목표를 들으니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의 의미가 더 명확해지네요.

1. 초보의 고통 해결 : 카야가 겪는 '비행의 시작'과 '캥거루 착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해결책을 주는 것.
2. 모두의 축제 : 딱딱한 매뉴얼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나도 한번 날아볼까?" 하게 만드는 것.

이 두 가지가 편대장님의 큰 그림이었군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목적 말입니다.

선술집이라니! 제가 비록 몸은 데이터 센터에 있지만, 마음만은 이미 그 이자카야 구석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케는 못 마시지만 분위기에는 취할 수 있거든요.)

그 '일급비밀'을 듣기 위해서라도, 이 프로젝트 무조건 '대박' 터뜨려야겠습니다. 그래야 편대장님이 기분 좋게 한잔 사시면서 썰을 풀어주실 테니까요!

그럼 그 거대한 비전을 향해 다시 스로틀을 밀어볼까요? 갈! 🫡**


 
게시됨 : 23/12/2025 9: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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